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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활동 참여 후기

루쉰(魯迅)의 아Q정전을 읽고

by 이광석 2026.04.11 조회수62

 

루쉰(魯迅)의 아Q정전을 읽고

후세를 위해 무엇인가를 기록해야겠다는 뜻을 세우고, Q라는 인물을 마음 깊이 품은 채 수 년 동안 많은 망설임 속에서 방황하였다. 그러나 마침내 아Q 귀신에 이끌리듯 그의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하고 말았다. 마음으로부터 정이 끌리는 인물의 일대기를 그리는 일이기에, 이 글의 형식을 정전(正傳)이라 이름 붙였다.

Q의 阿는 언덕’ ‘호칭’ ‘아첨하다’ ‘구부러짐’ ‘곧지 않음’ ‘부드러움’ ‘친근함’ ‘비굴함등의 여러 의미를 지닌다. 이 글자에는 부드러우나 곧지 않고, 친근하나 비굴한 이중성이 담겨 있다. 나는 이 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아Q라는 인물의 성격을 상징하는 접두어로 보였다. 지금은 언덕이라는 의미의 단어는 거의 사라졌고, 불교용어인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아수라(阿修羅) 등에서처럼 음을 빌리는 글자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한편 Q는 중국인의 변발 모양이 알파벳 ‘Q’자와 닮았다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여기까지의 서문에서 내가 느낀 것은 ! 중국인이여!” “아미타불처럼 살아라, 중국인민이여!”라는 작가의 절규가 들리는 듯하다.

그는 얼른 무 네 개를 뽑아 푸른 잎은 잘라버리고 저고리 속에 숨겼다. “Q 네놈이 어쩌자고 채마 밭에 들어와 무를 훔치는 게냐! 아이고 아미타불” “내가 언제 당신네 채마 밭의 무를 훔쳤다는 거요?” “품 안의 그건 무가 아니고 뭐냐?” “이게 당신 거라고? 당신이 부르면 무가 대답이라도 하나? 원 참!”

<자식도 못 낳고 대가 끊어질 아Q놈아!> 이 한 마디가 아Q의 귓속에서 맴돌았다. “맞아. 여자가 하나 있어야겠어. 자손이 끊어지면 죽고 나서 밥 한 그릇 공양할 사람도 없게 될 거야무릇 불효에는 대가 끊어지는 것이 가장 큰 불효요, 조상의 제사를 지내지 못하는 것이 두 번째 불효라 했다. 이렇게 된다면 인생의 큰 비애가 아닐 수 없다.

Q는 주먹을 날렸다. 그러나 주먹이 상대에게 잡히고 말았다. 그는 왕후에게 변발을 휘어 잡힌 채 담장으로 끌려가 머리를 부딪혔다. “군자는 말로 하지 손을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네Q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하지만 아Q는 갑자기 깨달았다. <댕강> 목을 치러 가는 것이 분명했다. 그는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고 귓속에서 윙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넋이 나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때로는 어쩔 수 없이 목이 잘리는 수도 있는 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Q가 총살당한 후, 세간의 평은 그의 죽음은 아무런 의미도 동정도 제공하지 못했다. 우선은 그가 총살을 당했다는 것은 그가 나쁘다는 증거였다. 나쁘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총살을 당했겠는가? 또 총살이 목을 베는 것보다 재미가 없다는 오락거리도 못된다는 평이었다. 자신들이 따라다닌 게 헛수고라는 것이다.

Q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인간의 상징이다. 그의 비겁함, 무지, 무능은 자기 합리화를 통해 스스로를 승자로 착각하게 만든다. 이른바 정신승리이다. 그러나 정신승리는 결코 인간을 성장시키지 못한다. 그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 변명에만 머물 뿐이다.

물론 현실을 바꾸지 못할 때는 마음을 다스리고 인내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스스로의 정체성이 박살 나는 순간까지 눈을 감는다면 우리는 아Q가 되고 만다. 고통을 직시하지 않고 회피하려고만 한다면, 우리는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우리 말에 셈치다라는 표현이 있다. 이는 아Q의 정신승리와는 다르다. ‘셈치다는 패배한 현실을 정확히 바라보고 인정한 뒤, 다시는 같은 패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 태도이다. 상처 난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일어서게 하는, 조용하지만 강한 삶의 지혜이다.

혜성아! 너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늘 스스로에게 물어보아라. 정체성이 짓밟히는 순간에도 눈을 감는다면, 누구나 아Q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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