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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센터 새소식

[후원회원과 함께 읽기]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고미숙의 '호모 쿵푸스'를 읽고...

by박현미/후원회원 · 2021.6.25.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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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쿵푸스.png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조금 과격한 부제에 마음이 끌렸다. ‘공부’라는 말을 떠올리면 학교가 생각나고 ‘학교’라고 하면 ‘성적과 시험’이 동시다발적으로 연상된다. 학교, 공부, 시험, 성적….  ‘시험과 성적’이라는 말은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니나 ‘공부’라는 말을 들으면, 눈이 가고 손이 가는 것은 항상 미진했던 내 노력에 대한 반성인가 싶다.

 

이 책의 저자, 고미숙. 1960년, 강원도 정선군 함백 출생. 아버지는 탄광노동으로 생계를 책임지는 가난하고 고단한 살림이었지만 자식공부만은 지상 과제로 여겼던 부모님 덕분에 도시로 유학하여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그러나 자의든 타의든 교수임용을 포기하고 중년 백수로 지식인 공동체, 「수유+너머」를 조직 및 운영을 시작으로 현재 「남산 강학원」 「감이당」에서 지금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지방에 사는 나도 몇 번 그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강단 있는 말투, 불편한 진실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던지는 유머가 재미있고, 내용 또한 진지하고 희망적이며 따뜻했다.

 

나도 저자처럼 집근처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고, 도시유학으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했다. 그와는 살짝 다르게 취직과 결혼, 출산과 육아, 워킹 맘으로 정신없이 바쁘게 살던 어느 날,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것이 마음에 ‘쿵’ 요동을 쳤다. 물론 그때 당시, 손자손녀들 중 나를 제일 예뻐해 주던 외할머니가 대중목욕탕 가던 길에 쓰러져 돌아가셨고, 태어나서 돌아가실 때까지 한 마을에만 살다 치매증세로 그 마을 요양병원에서 몇 개월 보내다 죽음을 맞이하셨던 시아버지의 삶이 한 몫 했다. 인생은 예상보다 더 짧고 더 허무하다는 생각으로 우울해하고 있을 때 <호모 쿵푸스>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간단명료하게 길을 제시해주었다. 

‘우정과 네트워킹, 읽기와 쓰기, 말하기와 나누기!’ 

 

 

공부, 왜 하는가?

 

“저는 85학번으로 문화 활동에 관심이 있어 이 모임에 들어왔습니다. 대동단결로 놀아보고 싶습니다.”

대학 졸업하고 직장인 풍물패에 들어간 첫 날, 순서를 돌아가며 간단하게 내 소개를 하는데 뒷줄에 앉았던 한 사람이 크게 말했다.

“나는 73학번이다. 반갑다, 친구야!”

‘엥~, 73학번?’ 얼굴로 봐선 내 또래이거나 많아도 한두 살 정도 위아래일 것 같은데 나보다 열두 살이나 많다고 하니……. ‘동안인가? 띠 동갑이여서 친구인가?’ 그 뒤로 나는 그 사람에게 꼬박꼬박 말 높이며 친구라는 사람에게 선배대접을 했는데, 그는 친한 친구 대하듯 반말을 했다. 그러다 한참을 지난 뒤 학번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응, 나는 1973년도에 국민 학교에 입학했거든. 니도 아마 그때 했을 걸. 대학은 못 갔다 아이가.”

‘띵~!’ 대학 학번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랑질한 게 부끄럽고, 스스로를 초등학교 73학번이라 말한 그 친구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대학의 학번은 일생동안 엇비슷한 연령대 외에는 서로 뒤섞일만한 공간자체를 빼앗아 버리고 차이와 이질성을 말끔히 지워버리고 아주 평균적이고 상식적인 존재, 곧 국민으로 재탄생시키는 데 학교의 소명에만 기여한다. (p.35-36 요약)


공부, 왜 하는가?

대학가고 취직하기 위해서?

칭찬받거나 잘난 척, 혹은 아는 척하기 위해서? 시험공부, 학교 공부는 다분히 그런 면이 있었으나 내가 다시 공부를 결심한 이유는 저자의 말처럼, ‘산전수전 다 겪으며 생로병사가 눈앞에서 입체적으로 펼쳐지는 이 때’ 를 ‘지혜롭게 통과’하기 위해서이다. 

책의 제목, <호모 쿵푸스>의 ‘쿵푸’는 ‘공부(工夫)’의 중국어 발음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공부를 말하기도 하거니와 디즈니 애니메이션 <쿵푸 팬더>에 나오는 무술 훈련, 수련과도 상통하다고 생각한다. <호모 쿵푸스> 는 무술 훈련하듯 도 닦는 마음으로  수련하듯 공부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공부, 무엇을 ‧ 어떻게 할 것인가?

 

공부와 독서가 다르지 않고, 공부한다는 것은 독서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무슨 책을, 어떻게 읽어야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 저자는 ‘내 몸과 운명을 바꿔 줄 책, 나보다 훨씬 폭넓게, 강렬하게 살았던 분들이 쓴 책, 생명의 역동성이 살아 숨 쉬는 책, 생사를 가로지르는 원대한 비전이 담긴 책, 새로운 시대를 예감하는 책, 한 시대의 통념에 맞서 치열하게 투쟁한 책, 마주칠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 책’을 만나라고 추천한다. 책을 읽으며 ‘그런 책이 어디 있노? 무슨 구라를 이렇게나?’ 하는 반감이 들 때쯤 ‘그런 책들을 우리는 <고전>이라고 부른다.’고 친절하게 짚어준다.

 

저자는 연암 박지원의 여행기, <열하일기>를 일곱 여덟 번 정도 소리 내어 읽었다고 한다. ‘사실 근대이전의 교육은 사서삼경을 비롯하여 각종 고전들을 소리 내어 읽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수천 번 읽고 또 읽어 완전히 암송한 다음, 뜻을 익혔다. 옛사람들에게 독서란 어디까지나 소리 내어 읽는 것이지, 속으로 달달 외는 것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반복된 낭송은 암송으로 이어지고 ‘구술’로 발전한다. 저자는 ‘구술이란 어떤 상황이나 문맥을 서사적으로 재현해내는 능력’으로 책에서 얻은 지식이나 정보를 잘 익혀 자기 문제화하고 자신의 논리로 정리해내며 새로운 질문을 해 나가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그러한 각 과정에서 ‘빨리 가려면 혼자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인디언 격언처럼 사람들 간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함께 하라고 강조 한다.


뭔가를 배운다는 건 어떤 경지에 오른 스승을 만나는 것이자 의기투합하는 벗을 모으는 일이었다. 초학자뿐 아니라 일정한 경지에 오른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역시 후학들을 지도함과 동시에 더 높은 수련을 위해 다시금 스승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러다보면 스승과 친구, 제자 사이의 경계를 서로 넘나들게 된다. 그리하여 스승이면서 친구이고 제자이면서 동시에 평생의 지기가 되는 ‘코뮌적’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p.89-90)

 

이러한 앎의 코뮌, 앎의 네트워크에 접속을 ‘호모쿵푸스=우리들’이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이다.

 

내 곁에 호모쿵푸스들이 산다!


이 억압과 소외의 사슬을 끊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 자기가 발 딛고 있는 곳을 배움터의 배치로 바꾸고, 지식의 향연을 구가하는 학습망을 조직할 것, (중략) 지식의 노예가 아니라 지식을 통해 자유를 누리는 길을 모색해야한다. 요컨대, 스스로가 ‘호모쿵푸스’임을 자각해야 하리라. (p.211)

 

한번 생각해보라. 우리네 삶에서 매일하고, 평생을 해도 변함없이 삶을 풍요롭게 해줄 수 있는 것이 공부 말고 달리 무엇이 있는지를. (중략) 누구나 평생 공부해야한다. 아무런 실용적 목적이 없이도 공부할 수 있을 때, 그 때 공부는 비로소 최고의 지식이자 사회를 변혁하는 무기이면서 동시에 운명을 통찰하는 지혜의 수행이 된다. 고로, 공부에 외부는 없다.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p.213)


2020년 1월부터 시작된 ‘코로나19’는 1년 6개월을 넘어서까지 그 기세가 등등하다. 개인적으로 모일 수 있는 인원이 네 명으로 제한되고, 네 명이 모이더라도 마스크를 꼭 쓰고 2m거리를 유지하라고 하니, 자연히 내가 참여했던 모든 대면독서모임을 중단하였다. 어느 누구도 자신으로 인한 감염, 전염으로 민폐 끼치기를 원하지 않으니까. 처음에는 그 시각에 혼자 책 읽고 글 쓰고 공원산책도 하며 한정적이나마 내게 주어진 여유 시간이 은근 좋았지만 날이 갈수록 책읽기도 글쓰기도 공원산책도 다 쓸데없이 여겨지고 울적해졌다. 종국엔 거실 소파에 거의 누운 자세로 눈을 TV화면에 고정한 채 리모컨으로 채널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우연찮게 온라인 독서모임 진행자 과정을 수강하고 온라인 독서모임을 한번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의가 있었고, 조금은 ‘누가 온라인으로 하려 하겠노?’ 의심하면서 모임공고를 재단 홈페이지에 올리는 것을 동의했다. 그러나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지원을 해서 온라인 모임에 인원이 많으면 진행이 힘들까봐 참가인원을 한정시켰다는 관계자의 말을 듣고 내심 놀랐다. ‘주변에 호모 쿵푸스 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네!’

“전문적 학습공동체로 책 읽고 글 쓸까?”

직장에서 슬쩍 던진 내 제의에 동료후배들이 적극하자고 나서서 요즘 나는 온오프라인으로 호모 쿵푸스들과 함께 살고 있다. 그래서 든든하다!

 

2021년 6월 22일 박현미 씀.

참여정부에서 정보과학기술보좌관(2004~2006)을 지냈던 박기영 순천대학교 교수가 노무현 대통령의 이러한 과학 사랑을 책 『그가 꿈꿨던 혁신 성장』으로 써냈습니다. 박기영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은 과학기술 혁신을 통해 성장과 복지가 선순환되는 선진국을 만들고 싶어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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