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소식
‘노무현다움’이란 무엇인가
“신뢰는 그냥 생기지 않습니다.” 차성수 노무현재단 제7대 이사장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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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차성수 신임 이사장이 노무현재단의 제7대 이사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참여정부에서 시민사회수석을 지냈던 그는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곁을 지켰던 사람입니다. 취임 직후 진행된 이번 인터뷰에서 차 이사장은 ‘신뢰의 민주주의’를 핵심 키워드로 제시하며, 재단이 나아갈 길과 사회가 직면한 민주주의의 과제, 다음 세대를 위한 철학적 토대를 진중하게 풀어냈습니다. 그의 말 속에는 ‘노무현다움’이란 과연 무엇인지, 그것을 오늘의 언어로 어떻게 새롭게 해석하고 실천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깊은 사유가 담겨 있습니다. 지금, 재단이 다시 시작하려는 민주주의의 길. 그 중심에서 차성수 이사장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Q. 이사장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노무현재단 이사장직을 맡게 된 소회와 앞으로의 각오를 들려주세요.
개인적으로는 정말 큰 영광입니다. 동시에 감히 제가 감당해 낼 수 있을까, 그런 책임감도 크죠. 지금 대한민국이 대전환기를 맞고 있잖아요. 이 시점에서 재단이 국민들로부터 더 큰 신뢰와 사랑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고민을 안고서 이사장직을 맡게 됐습니다. 혼자서는 어렵고요. 우리 직원들과 함께 후원회원들의 마음을 잘 담아가며 최선을 다해보려고 합니다.
Q. 노무현 대통령의 가치와 철학 중에서 이사장님께서 특별히 공감하고 이어가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저는 단연코 ‘신뢰’라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민주주의보다 더 중요한 것 그리고 민주주의가 유지되고 지속가능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라고 말씀하셨죠.
저도 수석으로, 또 기초단체장으로 일하면서 주민들께, 언론에, 제가 했던 첫 약속이 ‘정치의 신뢰를 회복하겠다, 신뢰의 민주주의를 다시 꽃피우겠다’는 것이었어요. 지금도 저는, 신뢰야말로 우리 사회가 대화와 소통을 통해 통합으로 나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이자 밑바탕이라 생각합니다.
신뢰는 그냥 생기지 않잖습니까. 먼저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의 차이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태도 위에서 대화가 가능해지고, 비로소 서로의 다름 속에서 합의를 찾아갈 수 있겠죠. 저는 그 과정을 하나하나 이루어 나가는 것이, 노무현 대통령께서 말씀하셨던 '신뢰에 기반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Q. 최근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여러 도전을 맞고 있습니다. 이사장님은 현재 우리 민주주의를 어떻게 보고 계시나요?
제도적으로는 민주주의가 이제 많이 정착됐다고 봅니다. 물론 일시적으로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려는 극단적인 세력도 있을 수 있죠.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시민들은 충분히 그걸 막아낼 만한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는 유지하기가 굉장히 힘든 제도이기도 하고 또 까다롭기도 해요. 깨지기 쉬운 유리병 같다고 할까요. 그래서 저는 정치 영역만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삶 속에서도 민주주의적인 태도와 문화를 길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터든, 가정이든, 친구들 간의 모임 속에서도요. 그래야 ‘민주주의가 내 삶의 보편이 된다’라는 확신이 생깁니다. 저는 그걸 이뤄나가는 게 결국 민주주의를 뿌리내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다양성이 굉장히 커졌어요. 문제는, 그 다양성을 포용하고 합의점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잘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거예요. 지금 우리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가장 큰 숙제는 사실 우리 자신들이죠. 서로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하는 마음가짐들이 있어요. 그렇게 되면 진영으로 나뉘고, 자기 확신 속에서만 머물게 됩니다.
그 결과, 숫자로만 승부 보려는 민주주의가 되어가고 있어요. 이쪽이 이기면 다 가져가고, 지면 다 잃는 식으로요. 그렇게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힘의 대결을 넘어서야 해요. 신뢰와 소통, 대화의 민주주의로 가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고, 그래서 또 필요한 거죠.
Q. 그렇다면 이사장님께서 생각하시는 현재 우리 사회에 가장 큰 숙제는 무엇인가요?
현재 가장 당면한 큰 숙제는 기득권이죠. 민주주의라는 이 제도화된 형식에서 여전히 구조적으로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기득권들을 어떻게 해체하고, 좀 더 공정하고 형평성 있는 사회로 전환할 것이냐. 이게 저는 민주주의의 과제이자, 대한민국 사회 전체의 대개혁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양극화라고 하는 건 그냥 단순히 민주적인 생각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경제적 불평등이 밑바탕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에요. 소득 격차, 교육 격차, 노동 격차 등 경제적 불평등에 기초한 양극화와 갈등을 해소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 사회가 워낙 빠르게 산업화를 하고 성장해 왔는데 인구 구조도 너무 급격하게 변해서, 급격한 고령화, 급격한 저출생을 동시에 겪고 있어요. 세대 간의 갈등도 당연히 심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적 조건에 있어요. 여기에 더해 가부장적 문화에 기초하고 있는 젠더 갈등까지 겹쳐 있죠. 이런 문제들이 많이 산재해 있어서 이 문제들을 민주주의 틀 내에서 해결하고 풀어가려는 노력,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큰 숙제죠.
정치적인 해결만으로는 부족하고, 사회 전반에서 신뢰와 대화가 작동하도록 해야 하죠. 복잡하죠. 세상이 참 복잡해졌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신뢰와 소통, 대화의 민주주의를 붙잡고 가야 한다고 느낍니다.
Q. 이번 대선 국면에서 재단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정치, 특히 선거라고 하는 건 여러 가지 변수들이 있겠지만 결국은 큰 민심의 바다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재단의 역할과 목표가 단기적인 승부에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더 중요한 건 중장기적인 방향이에요. 지방자치, 공정한 분배와 같은 중장기적 과제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끌고 가는 게 재단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민주주의를 더 깊게 뿌리내리고,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통해 자신의 삶이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확신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사업들을 강화해 나가는 것이 재단이 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이라고 봅니다. 그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꾸는 길이기도 하고요.
Q. 유튜브 160만 구독자 돌파 등 재단이 디지털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재단이 이루고자 하는 핵심 목표는 무엇인가요?
디지털 미디어는요, 양면성이 있어요. 기존 언론의 편향성을 넘어설 수 있지만, 반대로 혐오나 분열을 증폭시킬 수도 있거든요.
우리 재단이 하고자 하는 건, 노무현 정신과 가치를 “어떻게 지금 이 사회에 맞게 전달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과거를 기억하는 세대에게는 추억과 공감을, 새로운 세대에게는 설득과 영감을 줄 수 있어야 하죠.
노무현재단의 디지털 미디어는 새로운 세대에게 노무현의 가치와 노무현의 삶을, 우리가 따라가고 싶은 가치로 어떻게 설득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하느냐. 그것이 결국 디지털 미디어의 핵심이라고 봐요. 즉, 새로운 세대와의 접점을 어떻게 만들어 갈 건가에 대한 고민이 지금 필요할 때라 생각합니다.
Q. 앞으로 이사장님이 재단 운영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이나 영역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지난 20~30년 사이에 세상이 정말 많이 변했잖아요. 사회는 훨씬 더 복잡해지고 세분화됐고, 개인화도 심해졌습니다. 예전엔 상상하지 못했던 산업구조 변화, AI 시대의 도래까지 겹치면서 우리 사회는 엄청난 속도로 바뀌고 있어요. 이런 변화 속에서, 노무현의 철학과 정신이 오늘날의 정책, 제도, 삶 속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지 다시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과거를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참여정부의 기록과 자료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이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어떤 고민과 시도로 사회 문제에 접근했는지 근원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요. 그 과정을 오늘의 언어로 재해석하고, 시대에 맞게 다시 꺼내놓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 하나는 '노무현답다', ‘새로운 노무현’이라는 말의 구체적인 의미를 새롭게 정립하는 거예요.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끝까지 파고드는 태도,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자세,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용기, 끊임없이 도전하는 정신. 이 모든 것들이 '노무현다움'일 텐데, 각자의 삶 속에서 이걸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 나누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맥락에서 저는 노무현시민학교, 리더십 프로그램, 청년 교육 같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좀 더 체계화하고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꼭 정치인이 되지 않아도, 각자 삶의 자리에서 '노무현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들 수 있도록요. 마을에서, 학교에서, 일터에서, 혹은 가정 안에서도 말입니다.
저는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노무현의 정신을 '정치인의 삶'으로만 좁히지 않고, 더 넓은 삶의 태도와 문화로 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바로 지금 재단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이라고 봅니다.
Q. 재단과 후원회원 간의 소통을 더욱 강화하고자 하는 계획이 있으신지요? 후원회원분들께 드리고 싶은 메시지도 함께 부탁드립니다.
참 어렵습니다. 후원회원이 6만 명이 넘어요. 이 많은 분들과 어떻게 만나고 소통할 수 있을까, 늘 고민이 됩니다. 재단이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결국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회원들에게 가장 드리고 싶은 메시지는 감사하다는 마음입니다. 여러분이 계셔서 재단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조금은 부끄럽다는 생각도 듭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정신과 가치가 지금 더 중요해졌다는 건, 지난 20년 동안 우리 사회가 그만큼 나아지지 않았다는 뜻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사람사는 세상을 위해, 민주주의가 일상에서 실현되는 사회를 위해 노력할 테니, 앞으로도 함께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두 번째 드리고 싶은 메시지는 헌정 파괴 세력을 물리치기 위해 광장으로 나오신 많은 시민들, 특히 후원회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제 우리의 민주주의가 광장에만 머물지 않고 골목에서, 마을에서, 일상에서 살아 움직이길 바랍니다. 후원회원 한 분 한 분이 자신의 삶에서 민주주의가 자연스럽게 구현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주시면 좋겠다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