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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소식

노무현시민센터에서 만난 ‘김장하 장학생’, 이준호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어른 김장하에서 대통령 노무현’까지, 나눔과 실천이 키워준 삶

by홍보콘텐츠팀 · 2024.1.1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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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말, 경남에서 전해진 미담 하나가 전국을 훈훈하게 덥혀준 일이 있다. MBC경남이 기획·제작한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 이야기다. 방송이 나간 뒤 “주위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 있었다니! 정말 놀랍고 감동적”이라는 후기가 인터넷을 통해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다큐멘터리의 주인공 김장하 선생은 경남 사천과 진주에서 60년 동안 한약방을 운영하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아온 독지가다. 한약방으로 많은 돈을 벌었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쓰지 않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거나 학교를 세우고, 지역신문에 지원하는 등 평생을 이웃과 사회를 위해서 아낌없이 나누었다. 그러면서도 결코 자신을 드러내거나 내세우는 일이 없었다.

 

 

뒤늦게 알려진 아름다운 삶, <어른 김장하>는 설 특집으로 전국으로 확대 방영되었다. 지난 5월에는 <제59회 백상예술대상>에서 교양 부분 작품상까지 탔다. 백상예술대상에서 지역 지상파 작품이 수상한 것은 <어른 김장하>가 최초다. 방송 1년이 다 되도록 열기는 식지 않았고, 11월에는 전국 극장에 정식으로 개봉도 했다.

 

노무현시민센터에서 만난 ‘김장하 장학생’

다큐멘터리에 ‘김장하 장학생’으로 소개되면서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이준호 교수를 만났다. 공식적으로는 두 번째 만남이다. 첫 만남은 지난 2월 시민센터에서 열린 <어른 김장하> 특별상영회에 그가 참석하면서다. 관객과의 대화 중에 객석에 앉아 있던 그와 잠시 인사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제야 이 교수가 재단 창립 때부터 후원회원임을 알게 되었다. 김장하 선생도 노무현재단에 후원을 하고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전부터 관심이 많았어요. 대한민국 정치가 드디어 제 궤도에 들어가는구나! 기대가 컸죠.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그동안 그렇지 않았으니까요.”

 

2009년 이준호 교수는 서울대 민교협 총무를 맡고 있었다. MB 정부의 독선이 계속되면서 민교협 차원에서도 저항 운동을 거세게 벌이던 시기다. 갑작스러운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접했다. 시스템 수준으로 민주주의가 완성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듯해 좌절하기도 했다.  

 

그해 가을 노무현재단이 창립했다. 노 대통령 생전에는 하지 못했던 걸 이제라도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평생후원회원에 가입해 묵묵히 재단을 응원했다. 시민센터 건립이 한창일 무렵엔 건축 후원에도 참여했다. 마침 근처에 아내의 작업실이 있어 자주 오가며 센터가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내내 지켜볼 수 있었다. 센터 개관 이후 주말이면 점퍼 차림에 가방을 둘러매고 센터를 산책하며 노 대통령을 생각했다.   


‘예쁜꼬마선충’을 사랑한 발생유전학자

이준호 교수는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에서 유전학을 연구하며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보디보(Evo-devo)’, 이른바 ‘진화발생생물학’의 대가로 불린다. 무엇보다 ‘꼬마선충’ 분야에서는 국제적 선도자이다. 노화, 에너지 항상성, 스트레스 반응 등의 연구 분야에서 큰 역할을 한다는 평가도 받는다. 수명 연장에 관한 그의 연구논문이 ‘네이처’지에 게재되기도 했다.

 

인터뷰하는 동안 이준호 교수의 생물학에 대한 사랑, 학문에 대한 열정이 정말 뜨겁다는 걸 느꼈다. 특히 그의 주력 연구 대상인 ‘예쁜꼬마선충’ 이야기가 나올 때는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웃음이 번지는데, ‘정말 꼬마선충을 좋아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유쾌해 상대방까지 덩달아 웃게 만드는 웃음이었다. 


“제자들이 종종 그래요. 교수님은 꼬마선충 이야기할 때 목소리가 커진다고.(웃음) 1989년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할 때 꼬마선충 연구를 접하게 됐어요. 당시 한국에는 미개척분야였거든요. 보면 볼수록 관심이 가더라고요. 90년부터 집중적으로 연구를 시작했는데, 어느새 30년이 넘었네요. 생물학은 하나를 알면 더 알아야 하는 부분이 계속 생기고, 다시 모르는 부분을 연구해서 알아가는 과정이 너무나 즐겁습니다.”

 



‘예쁜꼬마선충’은 길이 약 1mm의 몸에 마디가 없는 아주 작은 벌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썩은 과일, 낙엽 더미 같은 유기물 등에서 세균을 먹고 산다. 대장균만 주면 잘 자라고, 번식력도 아주 좋아 3일이면 300마리를 번식시킬 수 있다. 생물의 진화 현상을 보는 데 아주 좋은 모델로 암 치료, 수명 연장, 노화 지연 등의 연구에 요긴하게 쓰인다.

 

이 시대 진정한 어른, 김장하를 만나다

“제가 이렇게 소중하고 가치 있는 연구를 평생의 업으로 삼을 수 있게 된 건 제 능력만으로는 불가능했을 겁니다. 주위에서 묵묵히 도움 주신 분들이 계신 덕분이죠.”

 

이준호 교수는 경남 사천이 고향이다. 가난한 집 7남매의 막내로 자랐다. 식구가 많아 살림이 늘 어려웠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집안 사정이 급격히 더 나빠졌다. 학교에 다니는 것조차 어려웠다. 

 



“어느 날 선생님 한 분이 불러 가보니 ‘너는 앞으로 평생 공부하는 거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다’ 그러시는 거예요. 그때 ‘김장하’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어요. 알려주신 주소로 찾아갔더니 김장하 선생님이 맞아주셨어요. 이것저것 묻지도 않고 공납금을 손에 쥐어 주시더군요. 책값은 물론 한약도 지어주셨어요. 그렇게 3개월에 한 번씩 대학 석사학위 받을 때까지 대략 8년간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장학금에는 아무런 조건이 붙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의 무한한 신뢰였다. 대학 때 학생운동을 하다 무기정학을 받았을 때도, 다시 학교에 복귀할 때도 김장하 선생은 담담하게 그를 받아주었다.  

 

“김장하 선생님은 어떤 지침을 주는 분이 아니에요. 그냥 살아오신 그 자체가 삶의 지표가 되는 분입니다.”

  

좋은 스승은 촛불처럼 자신을 녹여 길 밝히는 사람 

이준호 교수는 김장하 선생에게 받은 은혜를 늘 사회에 되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2018년 서울대 자연과학대 학장에 출마하면서 학장선거로는 이례적인 공약을 냈다. 가난한 학생이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중도에 연구를 그만두는 일이 없도록 장학금을 만들어 지원하겠다고 했다. 교수들 사이에서 “그런 건 학생회장 나갈 때나 하는 공약 아니냐”고 묻는 이도 있었다. 그해 6월 이 교수는 학장에 취임했고, 약속했던 장학금 ‘꿈의 사다리’를 만들어 학생들의 꿈이 끊어지지 않도록 도왔다. 그 약속은 학장에 재임하면서 4년 내내 계속되었다. 

 

“국민학교 때 꿈이 교사였습니다. 중학교 때는 중학교 교사, 고등학교 때는 고등학교 교사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막상 대학에 가서는 꿈을 잃었어요. 사회가 워낙 혼란스러울 때라, 개인의 꿈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지금 저는 대학에서 좋아하는 연구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결국 꿈을 이룬 셈이죠. 김장하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우리 포기하지 말아요” 

좋은 스승은 촛불과 같아서 자신을 소비해 다른 이들의 길을 밝힌다고 한다. 이 교수가 김장하 선생과 노무현 대통령에게 배운 삶의 철학도 이와 같지 않을까?

 

“보수정권이 다시 집권하면서 나라가 정말 위태로워졌습니다. 전에는 정부가 잘못하면 교수들도 성명서 내고, 기자회견 하고, 피켓도 들고 그랬어요. 그런데 요즘은 기자회견 준비하다가도 압수수색을 먼저 걱정하는 세상이 됐어요. 이럴 때일수록 더 단단해져야 합니다. 주위에 성공한 분에게 비결을 물었더니 ‘죽지 않고 있으니 성공할 기회가 옵디다’하시더군요. 우리 포기하지 말아요. 지혜롭게 이겨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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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훌륭한 선생님 밑에 훌륭한 제자님이 있네요 이교수님 밑에 또 다른 훌륭한 제자가 나오길 희망 합니다

    2024.1.26. 09:08
  • 인터뷰 감사합니다. 영화 보면서, '이 분들 중에 노무현재단 후원회원이 분명 있으실 것 같은데' 라고 말했거든요. 이렇게 뵈니 더 반갑습니다.

    2024.1.16.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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