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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소식

부를수록 힘이 세지는 노래, 쓸수록 단단해지는 가사

[후원회원 이야기] 싱어송라이터 조동희의 ‘예술 사는 세상’

by홍보콘텐츠팀 · 2024.1.30.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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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시민센터의 첫 느낌이요? 예상보다 너무 아름다워서 깜짝 놀랐어요. 공간이 주는 에너지가 참 좋아요. 여기서는 뭘 해도 기분 좋게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에요.” 

 

노무현시민센터(이하 ‘시민센터’)에서 가수 조동희를 만났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장필순의 대표곡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를 비롯해, 이효리, 잔나비, 정승환, 윤도현의 음악에 아름다운 노랫말을 쓴 작사가이자 가수로 이름을 알렸다. 그는 노무현재단의 정기 후원회원이기도 하다. 

 

지난해 노무현시민센터 4개 프로그램 도맡아 진행 

 

조동희는 문화예술인 가운데 올해 시민센터를 가장 많이 찾은 사람 중 하나다. 3월부터 6월까지 진행된 [정기 문화전 :우리 곁의 사람들]에서 기획·연출·사회·노래까지 1인 4역을 맡았고, 5월에는 어린이날 특별 프로그램 ‘아이 사는 세상’과 ‘엄마의 노래’를, 11월엔 [문화예술학교 : 작사의 시대]에서 작사 교실을 열고 후원회원·시민들과 예술 활동을 함께했다. ‘2023 후원회원의 날’ 행사에도 함께했다. 

 

“올해는 정말 1년 내내 시민센터와 함께였던 것 같아요. 친구들이 센터 직원 아니냐고 농담할 정도니까요.” 

 

어떤 분야든 마찬가지지만, 음악 하는 사람들이 노무현재단처럼 조금이라도 정치 성향이 느껴지는 단체의 사업이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건 적잖은 각오와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사회문제나 정치 이슈에 소신을 밝히거나 관련 행사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활동 제약을 받거나 불이익을 당하는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대표적인 예다. 조동희도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적이 있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고, 세월호 추모행사나 노무현 대통령 관련 영화에 참여한 것 등이 이유다. 

 

‘블랙리스트’가 웬 말, 정치 아닌 옮고 좋은 것 따를 뿐 

 

“저는 제가 정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 정치 잘 몰라요. 좋아하지도 않고요. 그냥 제 가치판단으로 옳은 것, 좋아하는 것을 선택할 뿐이죠. 어릴 때 아빠가 정치 관련 풍자 영화를 만들었다가 정권의 탄압을 받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오히려 기성 정치에 반감이 있거든요. ”

 


 

조동희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위한 추모곡을 만들었고, 관련한 버스킹 공연도 여러 번 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당연히 추모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방법이 그에게는 음악이었다. 2017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의 OST도 만들었다. 연출을 맡은 전인환 감독이 대학 영화동아리 후배이기도 했고, 출연진 중에 아버지 때부터 연이 닿은 이가 있어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어떤 목적을 갖고 시작한 게 아니었다. ‘마음이 가서’ ‘좋아서’ 한 일이다. 

 

“정치 가수로 낙인찍힐까 걱정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음악인, 예술인들이 정치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참 어처구니가 없어요. 제가 센터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건 평소에 노무현 대통령을 인간적으로 참 좋아했기 때문이에요. 노무현재단 역시 정당이나 정치집단과는 다른 곳이라 생각하고요. 저는 시민센터가 우리 같은 문화예술인과 대중, 시민들을 좀 더 가깝게 연결해 주는 징검다리라고 생각해요.” 

  

시민센터는 문화예술과 대중의 징검다리 역할

 

조동희를 사회적, 정치적인 관점으로 가둬 보는 건 그의 극히 일부분만 보는 것이다. 조동희는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 활동을 해온 아티스트다. 그의 이름 앞에는 여러 직함과 경력이 함께한다. 싱어송라이터, 앨범 프로듀서, 작가, 음반 레이블 ‘최소우주’ 대표, 실용음악과 겸임교수(전), 예술 창작소 마스터 강사(전), 영화와 드라마 음악감독까지, 일일이 다 적기도 힘든 다양한 이력은 어느 하나 정치, 혹은 정치적인 것에서 비롯된 것이 없다. 

 

조동희 삶의 예술적 뿌리인 가족들 이야기까지 더하면 그의 문화예술적 스펙트럼은 한없이 넓어진다. 아버지 조긍하 선생은 1957년작 〈황진이〉로 데뷔해 〈육체의 길〉, 〈영원한 모정〉, 〈잘 돼 갑니다〉, 〈상해 임시정부〉, 〈광복 20년과 백범 김구〉 등 20여 년간 60여 편이 넘는 작품을 연출한 영화감독이다. 그는 일찍이 피아니스트로 데뷔한 음악가이기도 하다.

 


 

가족력? 아버지부터 조카까지 음악 활동

 

큰오빠 조동진은 설명이 필요 없는 한국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대부로 불린다. 둘째 오빠 조동익 역시 「한국 대중음악 100년」에서 ‘명예의 전당 추천 100인’에 이름이 오를 정도로 실력 있는 음악인이다. 음악 선후배로 만나 ‘시누이와 올케’가 된 가수 장필순 그리고 조카 조민구까지, 그야말로 조동희의 가족은 음악으로 일가를 이뤘다. 

 

“아무래도 아버지나 오빠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요. 그렇다고 가족들이 저에게 음악을 직접 가르쳐주진 않았어요.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스무 살 무렵에 가요제에 몰래 나갔다가 낙방한 적이 있어요. 그때 동진 오빠가 그랬어요. 너 좋아하는 음악인 중에 음악대회 수상자 출신이 몇 명이나 되겠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해봐라. 그러면 길이 열릴 거라고요.” 

 


 

조동희는 1992년 작사가로 데뷔한 30년 차 음악인이다. 싱글과 옴니버스까지 합하면 30여 장에 달하는 앨범을 냈는데, 유독 정규 앨범은 2집이 끝이라 많은 활동량에 비해 ‘과작 가수’로 불리기도 한다.

 

“10월에 오프라인 작사 클래스 「작사의 시대」가 책으로 나왔고 가수들과 협업하고 있는 ‘투 트랙 프로젝트’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새해에는 정규 3집 앨범도 낼 거예요. 1집은 데뷔 18년 만에, 2집은 9년 만인 2020년에 나왔어요. 3집은 3년 만이니까 제법 빠른 편이죠?(웃음). 자주 많이 내는 것보다 정성과 노력으로 숙성시킨 좋은 앨범을 만들고 싶어요.” 

 

후원 활동, 경제력보단 함께하려는 마음이 바탕

 

조동희는 〈무현, 두 도시 이야기〉를 작업할 무렵부터 노무현재단에 정기 후원을 하고 있다. 베트남 푸옌성 지역 어린이들을 돕는 문화예술인 비영리 단체 ‘호아빈의 리본’에도 참여 중이다. 도종환 시인, 이철수 판화가 등 문화예술인들이 주축이 되어 시작했고, 방송인 김제동, 이금희, 배우 김혜수 등도 힘을 보탰다. 

 


 

“후원이란 게 꼭 돈이 많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무엇보다 내가 이 사회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자존감, 보람이 중요하죠. 시민센터가 사람들로 북적이는 모습을 볼 때면 ‘나도 후원회원’이란 생각에 마음이 뿌듯해요. 앞으로 센터에 작은 공연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면 좋겠어요. 봉하음악회처럼 ‘센터음악회’를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섭외는 제가 다 알아서 할게요. (웃음)” 

 

굽이굽이 음악이 담겨 흐르는 강물처럼!

 

조동희는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힘은 문화라고 말한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것은 거센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스미는 문화 예술적 공감이야말로 그가 생각하는 세상에서 가장 센 무기이자 힘이다. 

 


 

“배우는 연기로, 음악인은 음악으로 자신과 세상을 말하고 소통한다고 생각해요. 노래는 부르면 부를수록 힘이 세진다고들 하죠. 직접 쓴 가사를 계속해서 부르다 보면, 마음도 단단해지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노무현 대통령과 우리 모두의 꿈, 사람 사는 세상으로 가는 강물의 한 줄기는 아름다운 음악으로 채워지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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