捧下
대통령의 고향 마을에는 역사와 유서 깊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앞에 농장(봉하들판)이 옛날엔 낙동강 물이 넘쳐 홍수가 많았습니다. 3년 중에 2년은 물이 들고 한 해는 가물었어요.
그러면 굶어 죽지 어떻게 살아요? 그래서 홍수와 가뭄이 겹치는 3년에 한 해씩 겨우 좀 먹고 살았습니다.
대통령의 고향 마을에는 역사와 유서 깊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앞에 농장(봉하들판)이 옛날엔 낙동강 물이 넘쳐 홍수가 많았습니다. 3년 중에 2년은 물이 들고 한 해는 가물었어요.
그러면 굶어 죽지 어떻게 살아요? 그래서 홍수와 가뭄이 겹치는 3년에 한 해씩 겨우 좀 먹고 살았습니다.
봉하마을은 주호, 용성, 본산, 금봉, 봉하 등의 본산리 5개 마을 가운데 하나로 진영단감과 벼농사를 주로 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행정구역 상으로는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에 속한다. 봉화산 봉수대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봉하(烽下)마을’이라고 불린다.
봉화산에는 정토원이라는 절과 마애불이 있으며, 산 정상에는 마을 일대를 훤히 둘러볼 수 있는 사자바위가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마을 근처와 진입로 쪽으로 다수의 공장이 형성돼 있으나, 봉하마을에 들어서면 넓게 펼쳐진 들녘이 한눈에 들어오고, 뒤쪽으로 형성된 봉화산과 마을 앞쪽의 뱀산(피맥산) 등이 마을을 감싸고 있어 포근한 농촌을 느낄 수 있다.
지리학적으로 봉하마을은 기(氣)가 좋아 큰 인물이 나는 기운을 가진 마을이라고 한다. 봉황을 닮은 봉화산이 뒤쪽으로 마을을 감싸는 형상을 하고 있으며, 앞쪽에는 뱀산이 용의 형상을 하고 있음에 기안한다. 더불어 화포천과 봉하 들녘은 용의 서식지인 승지 형태를 하고 있고 뱀산 앞쪽으로 뱀의 먹이인 개구리산이 위치해 있다.
풍수지리학적으로 해석하면 마을은 습지형 논인 봉하 들녘과 화포천이 용의 서식지로 적합하며 먹이(개구리산)도 풍부해 용을 상징하는 왕(대통령)이 살기 적합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주변의 지명을 살펴보면 용성, 신용, 내룡, 용전 등 용(龍)을 상징하는 용어가 많이 쓰인다.
대통령은 봉하마을 사저 옆에 있는 생가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다. 소년 시절에는 마을에서 진영 읍내에 있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까지 한 시간 남짓을 걸어서 다녔다. 부산에 나가 공부한 고등학교 시절과 군 복무 시간을 제외하고, 신혼생활과 제대 후 고시공부도 마을에서 했다.
부인 권양숙 여사와도 봉하마을에서 만나 사랑을 키웠다. 권양숙 여사는 어릴 때 마을로 이사 와 성장했고, 후에 노 대통령과 백년가약을 맺어 고시 합격 뒤 새 출발을 위해 마을을 떠나기까지 수많은 추억과 사랑을 쌓았다. 마을 사람 대부분은 꽤 오래 이곳에 살던 분들이며, 노 대통령과 많은 인연과 추억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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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3,206㎡(약 1,060평)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2009년 8월 5일 보건복지부 국가보존묘지 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결정(현재까지 별도의 국가 예산 지원은 없음)
재단법인 아름다운 봉하(이사장 권양숙)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작은비석위원회 위원장), 승효상 교수(이로재 교수), 임옥상 교수(설치미술가), 정기용 교수(기용건축 대표) 등
묘역 전체 부지에 '국민 참여'박석(바닥돌) 1만 5천개 깔기
묘역 가장자리에 장대석으로 축대를 쌓아 주변과 구분
장대석 주위로 비자나무 등 조경수 심기
'작은 비석' 뒤편 벽(곡장) 추가 설치(30m→60m)
헌화 분향 등 참배 시설 정비, 묘역 입구에 작은 연못(수반) 조성
조명시설, 음향시설, 보안용 CCTV 설치
"화장해라.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는 대통령의 유지
"화장한 유골은 안장하되 봉분은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유족들의 뜻
태어나신 곳(생가), 퇴임 뒤 생활하신 곳(사저), 생을 마감한 곳(부엉이바위), 즐겨 다니신 등산로(봉화산), 친환경 생태농업 현장(봉하농장), 퇴임 뒤 생태계 복원을 위해 노력한 습지(화포천) 등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을 선정
비석을 세우지 않고 남방식 고인돌의 형상을 한 너럭바위로 대신하고 거기에 조계종 총무원장이었던 지관스님의 글씨로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여섯 글자만 새김. 비문 대신에 대통령을 추모하고 사랑하는 국민들의 추모글을 새긴 1만 5000여개의 박석을 바닥에 설치
퇴임 뒤 최초로 고향으로 돌아오신 대통령이었고, 전직 대통령과 직접 대화를 나누던 생가 마당의 모습을 많은 국민들이 잊지 못하고 있으므로, 봉하를 찾아오는 많은 국민들이 대통령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 묘역 조성
"화장하라,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영결식 후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 봉분 없는 납골묘 형태
태어나신 곳(생가), 돌아오셔서 생활하신 곳(사저), 생을 마감하신 곳(부엉이바위), 즐겨 다니신 등산로(봉화산), 퇴임 후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이신 곳(봉하들녘) 등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
비석을 세우지 않고 남방식 고인돌의 형상을 한 너럭바위로 대신하고 거기에 조계종 총무원장이셨던 지관스님의 글씨로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여섯 글자만 새김.
비문 대신에 대통령님을 추모하고 사랑하는 국민의 참여로 15,000개의 박석을 바닥에 설치함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은 봉화산의 줄기가 마을과 만나는 어귀 자락에 있다. 봉화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앞으로 흐르는 이곳은 배산임수의 형국을 하는 전통적 길지이다. 기다란 삼각형의 부지는 가운데로 또한 두 개의 물줄기가 흐르며 전체 영역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조선 왕릉 공간 형식의 입구 영역인 홍살문, 준비 영역인 정자각, 참배 영역인 능침과 같은 전례의 구성을 자연스럽게 이룬다. 삼각형의 부지인 까닭에 여러 행사 진행에도 적합한 제의적 형상이다. 묘역은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경건한 영역이다. 일상적 공간이 아니므로 지상에서 1미터를 높여 일상을 떠난 월대(月臺)를 만들었다. 마치 종묘 정전의 마당 같은 절대적 비움의 공간이다. 이 비움이 경건하도록 설치물은 극히 절제된 형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바닥에는 박석을 깔고 전체 모양을 '사람사는 세상'의 마을 배치로 그렸다. 멀리 위에서 보면, 이 속에 길도 있고 마당도 있으며 집도 있는 마을의 모습이다. 이 마을 속에 지나는 길로 표시된 부 분을, 우리들의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을 새긴 박석으로 포장한다.
입구 부분에는 수반이 놓여 있다. 월대에 오르기 전 우리를 비추는 시작점이다. 여기서 여미고, 기다란 장대석으로 다듬은 계단을 오르면 한없이 고요한 평원의 풍경이 펼쳐진다. 완만한 경사로 된 공간 속으로 우리를 초대하며 우리로 사유의 여정을 이끄는 것이다.
첫 번째 물줄기를 지나면 가운데 헌화대가 놓여있고 여기에 준비한 꽃을 내려놓고 건너편 지석에 모인 이들이 참배 마치기를 기다린다. 주변은 수없이 많은 이들의 간절함과 그리움의 글귀가 새 겨진 박석이 마치 군중을 이룬 듯하다.
첫 번째 물줄기를 지나면 가운데 헌화대가 놓여있고 여기에 준비한 꽃을 내려놓고 건너편 지석에 모인 이들이 참배 마치기를 기다린다. 주변은 수없이 많은 이들의 간절함과 그리움의 글귀가 새 겨진 박석이 마치 군중을 이룬 듯하다.
다시 물줄기를 건너 지석이 놓인 야트막한 언덕에 오른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 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대통령의 간곡한 당부가 새겨진 철판 위에 고운 지석이 놓여있으며 그 위에 '대통령 노무현'이 검박한 글씨로 새겨져 있다. 저 뒤에는 이 영역을 한정하는 곡장이 드리워져 있고 이 철판의 벽은 시간에 따라 검붉게 녹슬어 가며 이 모든 기억을 담아 가둔다. 그 둘레로 소나무 숲이 우거져 봉화산의 소나무와 합치되어 이 묘역과 완성된 풍경을 이룬다.
저 멀고 높은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던 대통령이었으므로, 일상의 우리 모두 만 날 수 있는 광장의 묘역이 그를 위해 적합할 것이다. 광장의 묘역, 이는 비움을 바탕으로 한다. 공 간은 여러 행위에 열려져 있으나, 이 비움은 본질적으로 시간을 담는다. 비록, 우리의 그리움과 간절함으로 바닥을 새겨 덮었지만, 이 광장을 찾는 무수한 발 디딤으로 언 젠가는 그 글씨도 닳아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어떤 영구불변을 꿈꾼 상징도 우리의 선한 기억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남는 것은, 우리가 그와 함께 했다는 기억뿐이며 그것이 우리의 진실이 된다.
고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유서에서 '아주 작은 비석'만 남겨 달라는 뜻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우리는 편안한 너럭바위로 봉분으로 삼고 그 위에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여섯 글자를 새기고, 받침대에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어록 한 문장만 새겼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통령 묘역에는 당연히 어떤 형태로든 우리들의 뜻이 담긴 글과 기념물이 따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아주 작은 비석'이라는 대통령의 뜻과 어긋나지 않는 형태로 구상한 것이 박석 설치입니다. 대통령 묘역 전체에 작은 박석들을 바닥돌로 설치하면서 그 박석에는 추모 기간에 온 국민이 보여주었던 존경과 애도와 사모와 사랑의 글을 새겨 넣어 그 거대한 전체를 비문으로 대신하는 구성입니다.
이렇게 국민이 쓴 비문들로 이루어진 집체적 비석은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만의 추모 기념물이 될 것으로 생각하면서, 박석 설치를 위한 모금 운동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2009. 11.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 추모공간위원회 유홍준 전 문화재관리청장)
박석(薄石, 博石)이란, 얇은 돌 또는 넓적한 돌이라는 뜻으로 전통적으로 궁궐과 왕릉 건축에 사용한 바닥 포장돌입니다. 두께가 10CM, 가로세로가 약 20CM의 이 박석은 경복궁 근정전과 종료 앞 뜰에서 볼 수 있듯이 대단히 품위 있고 기능적입니다. 작은 박석은 자연스럽게 마치 조각보처럼 이어 붙이면 아름다운 무늬로 될 수도 있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에 박석 설치가 완공되면 박석들이 어우러진 무늬는 '사람사는 세상'을 보여주는 그림이 될 것입니다. 그 전체의 형상은 묘역 뒤에 있는 봉화산 사자바위에서 내려다볼 때 아주 선명히 드러날 것이며 부엉이 바위에서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을을 향해 뻗어 있는 이등변삼각형으로 '사람사는 세상'을 형상화했다.
국민 글의 추모 글귀가 새겨진 박석 1만 5,000여 개와 일반 자연 박석을 설치했다.
묘역 입구에 설치된 작은 연못으로 마음을 비추는 거울 역할이자 묘역에 들어가기 전 마음가짐을 정돈하는 의미로 마련됐다.
입구 계단으로 대통령 묘역 방문의 첫 과정. 계단을 오르면서 마음을 정돈한다.
너럭바위를 앞에 두고 헌화와 참배를 하는 곳이다.
충남 부여 석산에서 채취한 자연석으로 봉분을 대신했다. 남방형 고인돌 모습으로 가로 2m, 새로 2.5m, 높이 40cm에 지관스님의 글씨 '대통령 노무현'을 새겼다.
대통령의 어록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를 신영복 선생의 글씨로 새겼다. 서서히 녹슬어 세월이 지나도 같은 모습을 유지하도록 내후성 강판을 썼다.
묘역과 자연의 경계를 구분하는 역할을 추가 공사를 통해 30m에서 60m로 길이를 늘였다. 비석받침과 같은 내후성 강판을 사용해 처음에는 적갈색이지만 차차 암갈색으로 변한 뒤에는 계속 그 형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오랜 기간 대통령처럼 변하지 않고 묘역을 지켜줄 것이라는 희망을 담았다.
오래될수록 곁에 두꺼운 산화층을 형성하며 진한 붉은색으로 변한다. 색깔이나 무늬에 대해 평판이 엇갈리기도 하지만, 현대 건축물의 외장재로 많이 쓰고 있다. 차가운 철이 아니라 '따뜻한' 철이기에 주변 자연과도 잘 어우러지며 각도에 따라 느낌이 미묘하게 변해서 단순하면서도 풍요로운 느낌을 준다.
녹물이 흘러내리면서 생기는 무늬에서는 신가의 두께를 느끼며 색깔과 질감에서 오는 무게감과 질량감을 공유하고, 이음새의 디테일을 통해 경쾌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철강의 꽃'이라 불리기도 한다.
대통령 묘역 조성의 원리이기도 한 이 말은 백제본기에 나오는 내용으로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라는 뜻이다.
경기 성남 백자가마(직경 30cm, 높이 25cm)
전북 익산 황등석(직경 50cm, 높이 50cm)
충남 보령 남포오석(가로 124cm, 세로 68cm, 높이 79cm)
강원 횡성
김해 화포천
전북 익산 황등석, 충남 보령 애석, 경기도 운천석, 황해도 해주 애석, 충남 부여석 등
일일 묘역 개방시간 08:00 ~ 19:00
연중 휴장일이 없는 것이 원칙이지만 묘역 운영/관리 사정에 따라 필요한 경우 휴장할 수 있습니다.
별도의 의전 및 참배 절차 없이 헌화, 분향, 묵념 등 참배객의 자율적인 참배를 원칙으로 합니다.
묘역 내 시설 보호를 위해 아래와 같은 제한사항을 적용합니다.
매년 1월 1일
매년 5월 23일
공휴일
수시
노무현 대통령은 1946년 9월부터 사법고시에 합격해 부산으로 이사한 1975년까지 30여 년을 봉하마을에서 보냈다. 2009년 9월에 복원된 생가를 포함해서 모두 4군데 집에서 살았는데, 출생부터 영·유아기와 학창 시절, 그리고 결혼과 출산, 그리고 퇴임 이후까지 치면 ‘평범한 시민 노무현’으로 살았던 시간 대부분을 봉하에서 생활한 셈이다.
봉하마을 중앙에 있는 지금의 생가는 태어나서 8살 때까지 살았다.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봉하를 떠나면서 새 주인에 의해 양옥으로 개조됐는데, 대통령 퇴임에 즈음해서 김해시 도움으로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했다. 달라진 점은 방문객들의 편의를 위해 화장실을 수세식으로 바꾼 것 정도. 대통령은 생가를 복원하면서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하되, 생가를 방문한 사람들이 편히 쉬어갈 수 있는, 박제되지 않고 사람들의 삶의 향기가 나는 ‘쉼터’가 되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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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9월 1일(음력 8월 6일) 농부인 아버지 노판석 씨와 어머니 이순례 씨 사이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나서 8살까지 살았던 집이다. (2010년부터 대통령 생신 행사는 양력 9월 1일에 한다)
대통령은 6살 때 천자문을 외워 동네에서 ‘노천재’로 불리기도 하고, 동네 어른들한테 인사를 잘해 ‘인사 잘하는 과수원 집 막내’로 불렸다고 한다. 봉하마을에서는 생가를 포함해 4군데 집에서 살았다. 1973년 권양숙 여사와 결혼을 했고, 마지막 집에 살 때 뱀산 중턱에 흙으로 된 ‘마옥당(磨玉堂)’을 짓고 고시공부를 했으며, 1975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부산으로 이사했다.
2008년 2월 대통령께서 퇴임하고 봉하마을로 귀향할 때 생가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당시 생가 복원을 놓고 김해시와 논의했으나 매입비가 비싸 난항을 겪었다. 그러자 대통령 고교 친구가 직접 생가를 사서 김해시에 기부했고, 이후 생가쉼터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08년 말까지, 복원될 생가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은 여러 차례 생가의 원래 모습에 대해 자문했고 생가 복원이 어떻게 되면 좋을지에 대해 의견을 제시했다. 이때 대통령은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되, 생가를 방문한 사람들의 ‘쉼터’가 되기를” 희망했다. 박제된 집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의 향기가 나는 집을 원했다. 살아 계셨으면 낮에는 가까운 사람들과 차도 한 잔 마시고, 밤에는 실제 자고 갈 수도 있는 집으로 운영되었을 것이다.
2008년 말까지 철저한 고증과 자문을 통해 설계를 마무리했다. 2009년 2월 착공하여 7개월 만인 그해 9월에 완공했다. 대통령 생신인 9월 24일(음력 8월 6일) 생가쉼터 행사를 열고 일반에 공개했다.
기존 생가를 해체하던 중 2개의 상량문을 발견했는데, 그중 2개의 상량은 생가 복원 시 다시 사용했다. 생가는 전통적인 시골 초가집 형태로 11평 규모의 본채에는 방 2칸과 부엌이 있고, 4.5평인 아래채에는 헛간과 옛날식 화장실이 있다.
생가 건물 복원이 끝날 즈음,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문화재 전문가들과 함께 생가에 비치할 소품을 엄선하여 당시 생활상에 가장 가까운 소품들로 배치했다. 대부분 김해 인근 지역에서 직접 구한 소품이다.
생가는 ‘대통령의 삶이 시작된 곳’, 생가 복원은 봉하마을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퇴임 뒤 돌아와서 일생을 마감한 대통령의 삶과 죽음을 추모하고 기념하는 ‘대통령 기념사업의 시작’이다.
재단법인 아름다운 봉하는 생가와 사저, 묘역을 중심으로 봉화산과 화포천, 봉하들판 등 대통령 일생이 어우러져 있는 봉하마을을 잘 가꾸어, 찾아오신 분들이 대통령께서 평생을 두고 추구했던 가치와 철학, 업적을 보고 듣고 배우고 느끼고 갈 수 있는 장소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생가 옆 쉼터는 방문객들이 편히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원했던 대통령 뜻에 따라 설계됐다. 당초 설계는 방문객들이 잠깐 앉아서 차를 한잔 마실 수 있는 다실(茶室)과 화장실로 구성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다실은 대통령을 오래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념품 매장으로 용도를 변경했다. 기념품 매장은 묘역과 생가를 담당한 '재단법인 아름다운 봉하'(봉하재단)가 운영하고 있다. 판매 수익금은 대통령 묘역과 생가 관리, 기념사업에 충당되고 있다.
쉼터로 가는 길목에는 등나무를 심어놓은 파고라(그늘막)와 의자를 비치했다. 방문객들을 위한 방명록을 비치했고,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넣을 수 있는 노란 우체통이 있다.
대통령 사저는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후 서거 전까지 살았던 곳으로 뒷산을 가리지 않고 자연환경과 어울릴 수 있도록 지붕을 낮고 평평하게 지어 '지붕 낮은 집'으로도 불린다. 집무실, 서재, 안채, 사랑채, 경호실 등으로 구성된 단층에 소박한 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언젠가 국민에게 돌려줘야 된다'라는 평소 대통령의 뜻에 따라 2018년 5월부터 대중에게 공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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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을 하는 동안 국가 균형 발전을 이루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가는 것이다. 서울과 수도권은 너무 집중되어 비좁으니까 지방으로 가자는 것인데, 앞장서서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서울이 좋다고 눌러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지방을 살기 좋게 만들기 위해 "나도 갑니다!" 떳떳하게 말하고 싶었다. 부산 근처 경남 일대의 은퇴자 마을 카탈로그를 구해 보면서 살 곳을 찾았다. 여러 곳을 봤지만 선뜻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2006년 3월 나이지리아를 방문했을 때, 아내가 봉하로 가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듣고 보니 고향을 두고 뭐 하러 다른 곳을 찾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귀국해서 귀향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고 자란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중략).... 내가 고향에 돌아가 사는 것이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국민 통합을 이루는 작은 도움이라도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 中, 유시민 -
"사저는 내가 살다가 그 후엔 시민들에게 개방되어 활용될 공간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사저를 건축하는 초기 단계부터 사저의 성격과 향후 장기적 활용 방안에 관한 계획을 염두에 두었으며 2008년 가을, '만남의 광장'에서 봉하마을을 방문한 시민들에게도 위와 같은 취지로 수차례 사저 개방에 대한 뜻을 내비침.
대통령 서거 후 사저에 대한 대통령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유가족이 뜻을 모아 사저의 소유권을 노무현재단에 기부, 시민들에게 개방하여 묘역, 생가, 향후 건립될 기념관 등과 함께 대통령에 대한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함.
(사저는 장기적으로 사적 또는 등록문화재로 지정받아 문화재 시설로 운영 관리할 수 있도록 준비 중)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30-6번지
대지 1,290평, 건축 180평(건평)
건축가 故정기용
외관상 하나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나 유족들이 생활하는 개인소유 구역과 경호원들이 근무하는 국가 소유 구역을 구분되어 있음
2006년 11월 23일 부지 매입을 시작으로 2008년 3월 18일 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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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뒷산은 높고 큰 산이 아니니 사람 사는 공간이 우뚝 서 있기 보다 산세와 굴곡 등 자연의 선을 따라 낮게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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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가기 위해 모두 밖으로 나와야 하며 이는 경치를 보고, 바람을 쐬고, 새소리를 듣는 등 되도록 자연과 마주칠 수 있게 하기 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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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된 공간은 생활하기 불편하나 사저를 시민에게 돌려준다는 대통령의 뜻을 반영하여 향후 사저가 사회에 환원되어 관람, 전시 등 다른 용도로 사용되기에 적절한 구조로 만듦
각 공간을 이동하는 복도에 비를 피하기 위한 지붕을 씌워 화랑 분위기로 만듦. 건축 설계상 지붕면적은 설계 면적에 포함되므로 실제 공간보다 큰 면적으로 책정되어 있음.
퇴임 대통령의 경호업무를 위한 경호동을 별도로 두지 않고 사저에 포함시켜 설계함. 전체 건축설계 면적이 늘어나지만 대통령 업무공간과 가까이 두어 상호 업무 효율을 높이자는 대통령의 실용적인 뜻을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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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을 맞이하고 식사를 함께하는 장소로 활용
정남 방향으로 지어져 인공조명 없이도 충분히 밝으며, 겨울철 충분한 난방효과가 있음.
네 폭 병풍 느낌을 갖게 디자인된 동쪽 창문을 총해 사자바위 등 봉화산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어 가장 전망이 좋은 자리를 손님에게 내어주는 등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던 곳
동고서저의 천장 설계는 풍광을 더욱 잘 보이게 하고 채광을 더욱 좋게 함.
남쪽 벽면에 故신영복 선생의 글씨로 '사람사는 세상'이 액자로 제작되어 걸려 있음.
서쪽 벽면에 한 해외교포가 대통령 취임식 장면을 찍은 비공식 촬영 사진이 걸려있음(대통령 퇴임 후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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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내외의 개인적인 생활공간으로 거실과 침실로 구분되어 있음.
거실에는 개인 직업을 진행하시던 컴퓨터를 비롯해 생전 사용하시던 물품들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음.
거실에 故신영복 선생의 글씨로 '우공이산(愚公移山)'이 쓰인 액자와 원불교 종법사가 그린 '달마도'가 걸려 있음.
거실은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글이 쓰인 장소이기도 함.
현재에도 이곳에서 유족과 보좌진들이 차례, 제사를 지내고 있음.
벽면에는 드문드문 손주들이 한 낙서도 볼 수 있음.
침실 앞 야외에는 대통령이 아침식사 후 휴식을 취하던 나무 벤치가 보존되어 있음.
비서실, 경호실 등 보좌진들의 업무공간으로 대통령이 주로 시간을 보내던 회의실과 바로 붙어있음. 보좌진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며 일하는 대통령의 업무 스타일이 엿보이는 공간 구성
[에피소드] 통상적으로 퇴임 대통령의 경호는 업무량이 적어 근무기간을 휴식기간으로 생각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주민, 방문객들과 소통하기 위한 잦은 외부 활동으로 되려 격무에 시달림
여러 고급 수종의 기증 의향을 정중히 거절했던 대통령이 유일하게 애착을 보여 기증받아 이식한 나무(진주 단성면).
사저 내 유일하게 표지석이 있는 나무로 노무현 대통령으로 인해 4 · 3 제주 민주 항쟁이 재조명된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유족회가 보낸 나무
경복궁 정원을 모방하여 설계하였으며 매 계절마다 보는 풍광이 다르고 특히 봄에는 목련, 목단 등 다채로운 꽃이 소담하게 피어 아름다운 경치를 만든다.
봉하마을 생태문화공원은 김해 봉화산 근린공원의 일부로써 국가보존 묘역인 노무현 대통령 묘역을 중심으로 봉화산 기슭으로부터 봉하들판에 걸쳐 2015년 조성되었다.
생태문화공원은 생태적으로 건강하고 아름다운, 잘 사는 농촌마을을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장소로 설계되었으며, ‘흙길 따라 풀, 꽃, 나무를 함께 보면서 새소리 벌레소리 들으면서 길을 걷는 삶, 그것이 국민들의 복지다.’라고 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뜻을 살려 <사람사는 들녘>이라 이름 지었다.
연중무휴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로 144
055-344-1306
‘시민(民)과 함께하는 쉼터’라는 뜻으로 공원 안내 및 프로그램 정보 등을 제공하는 방문자 센터
봉화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모아 타원형 모양의 영지를 조성하여 수면에 투영된 봉화산과 부엉 이바위를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곳
자연에너지를 활용한 식물재배를 체험하는 학습 장소로 환경과 생태 등의 주제로 전시 및 행사, 자원봉사 모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곳
봉하마을 경작지의 아름다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으로 종자 파종에서 육묘, 이식, 수확에 이르는 재배의 전 과정을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학습 장소
봉하들의 논에서 화포천에 이르는 다양한 습지 식물과 그에 따른 식생의 변화, 습지의 역할 등을 관찰, 체험할 수 있는 곳
봉화산, 봉하논들, 화포천으로 연결된 <숲-늪들>의 풍요롭고 다양한 교육, 놀이, 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학습하는 체험교육의 공간
봉화산 자연 속에서 즐길 수 있는 쉼터가 있는 공간으로,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여유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곳
2008년 노무현대통령의 ‘아름답고 살기 좋은 농촌마을 만들기’의 일환으로 조성되어,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손길로 가꿔지고 있는 곳
노무현 대통령의 오랜 벗이자 후원인이었던 故 강금원 회장이 대통령과 함께 봉하마을을 일구었던 비서관들과 손님들이 지낼 공간으로 건립했던 봉하 연립주택을 강금원 기념 봉하연수원으로 개관했다.
봉하마을은, 미래를 내다보고 민주주의의 완전한 이상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나가자던, 생태계가 살아있는 아름답고 잘 사는 농촌마을을 만들고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자 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꿈과 노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강금원 기념 봉하연수원은 봉화산, 봉하들판, 화포천을 비롯한 노무현 대통령의 숨결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봉하마을 생태환경 속에서 대통령과 우리 모두가 꿈꾸었던 ‘사람사는 세상’의 의미와 가치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후원회원, 시민 여러분의 특별한 교육 연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갈 마(摩), 옥 옥(玉), 당 당(堂).
구슬을 만드는 마음으로 공부에 정진하라.
노무현 대통령은 봉하마을 뱀산 중턱에 흙으로 집을 지어 ‘마옥당(摩玉堂)’이라 짓고, 고시공부를 하여 1975년,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이름 앞에 붙은 ‘봉화(烽火)’라는 한자에서 알 수 있듯 예전에 봉화를 올리던 곳이다. 조선시대에 왜적이 침입했을 때 부산 가덕도 천성보에서 처음 이를 알리는 봉화를 올리면 녹산, 김해를 이어 진영 봉화산에서 봉화를 올렸다고 한다. 마애불, 정토원, 호미든 관음상, 사자바위 등이 잘 알려져 있다.
해발 140m에 불과한 낮은 산이지만 골이 깊어서 대통령은 생전에 봉화산을 두고 “낮지만 높은 산”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주변에 낙동강과 화포천, 들판 등 더 높은 산이 없어,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사방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여러 골짜기 가운데 노 대통령은 ‘자은(子恩)골’을 좋아했다. 귀한 손님이 오면 제일 먼저 이곳에 데려가 “봉하제일경”이라며 자랑이 대단했다.
봉화산은 봉하마을의 아름다운 자연 명물 가운데 하나이자 대통령이 즐겨 걸은 산책코스. 대통령은 멀리서 손님들이 찾아오면 봉화산을 함께 걸으며 어린 시절과 산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직접 설명해 주곤 했다.
"해발 140m에 불과한 낮은 산인데도 주변 40~50리가 모두 평지라 정상인 사자바위에 올라서 보면 꽤 높아 보입니다. 옛날 봉화(烽火)를 올리던 봉수대가 있었던 곳이라 봉화산(烽火山)이란 이름이 붙었지요. 사자바위 양옆으로 길게 뻗고 있는 학(鶴)의 모양을 하고 있어 건너편 뱀(산)이 화포천의 개구리(산)을 못 잡아먹게 견제하는, 약자를 보호하는 산이죠."
봉화산 숲길은 대통령 묘역에서 출발해 봉화산 주요 길을 따라 올라갔다가 본산배수장 방향으로 내려온 뒤 둑길, 생태연못을 거쳐 '노무현 대통령 추모의 집'에 도착하는 코스로 구성되었다. 길이는 5.3km이고, 걸어서 2시간 30분 정도가 걸린다.
대통령이 퇴임 뒤 고향 봉하마을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화포천 청소. 사저가 미처 완성되기도 전이었는데, “봄을 그냥 보내면 1년을 그냥 보내는 것 같다”라며 머뭇거림 없이 바로 두 팔을 걷어붙였다. 대통령의 관심과 노력은 자연스럽게 습지와 마을 환경 개선에 대한 관심과 행동으로 확대돼 봉하마을은 물론 인근 지역 생태와 환경개선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다.
화포천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자연하천형 습지로 총 500만㎡에 이른다. 290여 종이 넘는 동식물과 멸종 위기 야생동물이 서식한다. 21.2km에 이르는 자연적 모습을 그대로 간직해 ‘한국의 아름다운 100대 하천’에 선정되기도 했다. 매년 겨울이면 멀리 중국과 시베리아 등지에서 기러기와 청둥오리 등 다양한 종의 겨울철새 수천 마리가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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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포천 습지길은 2011년 5월 14일, 대통령 서거 2주기에 맞춰 개장했다. 사자바위, 편백나무 숲길, 정토원 등 봉화산 곳곳을 오르는 '봉화산 숲길'과 비교해 대부분 경사가 완만한 코스여서 연로한 분들이나 어린이들이 쉽게 거닐 수 있다.
화포천은 국토해양부가 뽑은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의 하나로, 전체 길이 21.2km에 이르는 국내 최대의 하천형 배후 습지다. 오염이 적어 다양한 물고기와 창포, 선버들 같은 습지 수생식물이 사는 생태의 보고이기도 하다.
대통령은 습지상태 보존에 관심이 많아 귀향 뒤 직접 화포천 정화활동에 참여하고 꾸준한 습지 연구를 통해 쓰레기와 폐수로 황폐해진 화포천을 복구하는데 큰 노력을 기울였다.
이제 화포천은 매년 겨울이면 기러기와 청둥오리 등 다양한 종의 철새 수천 마리가 찾아드는 보금자리가 되었다. 2012년 12월까지 김해시의 화포천 생태습지공원 조성 사업을 통해 생태탐방로(4.5km) 및 생태학습관(657㎡)을 완공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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